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시작인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의 정체성
유대인의 역사는 성경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습니다. 이 약속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후의 사건들을 이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거주하게 되었으나, 기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집트에 이주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번성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히브리인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후 역사적인 중요성을 더욱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이집트인들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만들고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노예 생활과 애물 삼기, 억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모세라는 인물이 나타나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여정을 이끌었습니다. 이 여정은 유대인들이 자유를 찾아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그곳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들을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의 역사는 아브라함의 약속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중심으로 한 대모험, 그리고 이스라엘의 건립까지 이어진 복잡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온주의의 배경
시오니스트 운동의 역사적 배경은 다양한 시기와 사건을 포함하며, 그중에서도 아래의 주요 사항이 강조됩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정복 이후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다른 문화와 종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땅으로 돌아가겠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신념과 역사적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수세기에 걸친 박해 이후, 많은 사람들은 유대국가가 그들의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중동의 고유한 고향을 지어야 할 최선의 희망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유대인들은 이민을 통해 이스라엘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민 운동은 특히 오스만 제국 내에서 활발했으며, 이는 피오니어 정신과 함께 자발적인 공동체 구축을 통해 이스라엘의 땅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오니스트 이노켈 블람은 1897년 시온주의자 의회를 소집하고 이스라엘의 재건을 선언하며 이 운동의 정치적 기초를 다졌으며 20세기 초반, 수만 명의 유럽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현대사의 분쟁의 원인은 영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주로 같은 땅을 주장하는 두 그룹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갈등은 실제로 초기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약 백 년 정도밖에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때쯤 동지중해 지역, 지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수세기 동안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곳은 종교적으로 다양했으며, 대부분은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살았지만 소수의 유대인들도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첫째, 이 지역 사람들 중에서 무슬림 아랍족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의 독특한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열망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토만 제국이 붕괴하고 영국과 프랑스 제국은 중동을 나누어 가졌으며,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 팔레스타인 관리지역이라고 부르는 지역을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영국은 유대인 이민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더 많이 도착하며 농장 공동체에 정착하자, 유대인과 아랍 사이의 긴장이 증가했습니다. 양측 모두 폭력 행위를 저질렀으며, 1930년대에 들어서 영국은 유대인 이민을 제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반응으로 유대인 민병대가 형성되어 지역 아랍들과 영국 통치에 대항했습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영국 팔레스타인으로 유럽에서 도주하게 되었으며, 유대국가를 세우기 위한 최선의 희망으로 중동의 역사적 고향을 보았습니다. 1947년, 아랍과 유대인 간의 분쟁이 점점 더 격화되자, 유엔은 영국 팔레스타인을 두 개의 별도 국가로 나누는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을 위한 이스라엘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을 위한 팔레스타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 모두 신성한 장소가 있는 도시는 특별한 국제 지역이 될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유대인에게 나라를 주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확립하며 더 이상 영국이 통제할 수 없던 종교적 분쟁을 끝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획을 수용하고 이스라엘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의 아랍들은 유엔 계획을 그들의 땅을 훔치려는 유럽 식민 지배로 보았습니다. 막다른 지역에 이제 막 독립을 획득한 많은 아랍 국가들이 영국 팔레스타인 전체였던 통합 아랍 팔레스타인을 확립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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